[오캄의면도날] 가장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전히 이해한 것이다.

"오캄의 면도날" 

 

이 구절을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과학 도서를 즐겨 읽었었는데, 그때 읽었던 책 중 하나에서 이 구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 이름은 '빌 아저씨의 과학 교실'. 저자 '빌 나이'.

 

초등학생을 타겟으로 나온 책이었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읽어나갈 생각이었던 내게 뒷통수 제대로 쳐준 책이었다. 첫 장에서 등장한 개념인 '오캄의 면도날'은 당시 삶의 경험이 별로 없던 초등학생 꼬마가 온전히 이해하는 건 상당히 어려웠다. 방심하고 있다가 시작부터 궁극기 때려 맞은 느낌이랄까.. 식물도감이나 어린이 과학잡지 따위를 보던 초딩에겐 익숙지 않은 내용이었다.

 

'뭔 갑자기 면도날이여~?'

 

중력, 전자기력 등 자연의 4가지 기본 힘을 서술하면서 같이 소개한 개념이었다. 

다행히 관련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았고, 서술 자체는 어렵지 않아서 '아 이런 개념이 있구나' 정도만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 다행히 그 이후로는 흥미진진한 과학 실험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

 

시간이 흐르고 엔지니어로 종사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저자가 왜 첫 장의 주제를 이런 어려운 걸로(적어도 초등학생이 이해하기엔 꽤 어렵다) 선택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아주 당연한 개념 같아 보이지만, 막상 많은 사람이 쉽게 간과한다는 점, 기본 중에 기본이지만 꽤 많은 학도가 여기서 실수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한 번 쯤 언급해야할 중요한 개념임이 분명하다.

 

 

TV 프로그램 '빌 아저씨의 과학이야기'에 출연한 '빌 아저씨의 과학교실'의 저자 '빌 나이', 90년대 후반부터 00년대까지 어린이들의 과학적 호기심에 상당부분을 기여했다. 현재 나이는 71세로 백발이 다 되었다.



그렇다면 '오캄의 면도날'은 무엇일까?

 

면도날이라는 단어에서 연상할 수 있는 그대로다.

설명을 더 이상 깎을 수 없을 때까지 계속 깎으라는 것이다.

장황하고 복잡한 부연설명 모두 날려버리고 가장 간단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게끔 하라는 말이다.

가장 간단한 설명이 그것을 완전히 이해한 설명이라는 것이다.

 

오캄의 면도날(Occam's Razor or Ockham's Razor)이라는 용어는 영국의 수도사였던 오캄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영국 오캄 마을에서 태어난 윌리엄은 신학과 철학에 많은 부분을 기여한 사람이었다. 

당시 중세에서는 신학자들이 복잡하고 광범위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했다. 복음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를 따지며 의견이 분분했었고, 하루하루 전쟁 같은 논쟁이 펼쳐지곤 했다.

그 와중에 오캄은 본질에 벗어난 쓸모없는 질문들과 가정들을 배제하려고 했다.

(아마 본질에 벗어나 저 멀리서 빙글빙글 맴도는 토론 내용에 신물을 느꼈을 것이다.)

 

윌리엄은 그의 저서 Ordinatio 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 "많은 것들을 필요 없이 가정해서는 안 된다."

2. "더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경우, 많은 수의 논리를 세우지 말라."

 

쉽게 말하자면, "간단하게 설명해라!" 인 것이다. 

"면도날"에 비유되었듯이 불필요한 가정이나 부연은 과감하게 잘라내라는 뜻이다.

이 원리는 사고 검약의 원리(Principle of parsimony)라고 불리기도 한다.

 

오캄의 이러한 철학적 접근은 이후 사상가들과 과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자연철학의 발달도 이러한 기조를 따라 진행되었고, 근대와 현대의 대부분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은 이러한 개념을 기본 지침으로 삼는다.

 

 

간단하게 설명하지 못하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현대의 수많은 과학 이론은 복잡하다.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은 또 다른 기반 지식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기반 지식은 또 다른 기반 지식을 필요로 하고,

또 다른 기반 지식은 또또 다른 기반 지식을 필요로 하고..

하나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지식의 단계를 거쳐오게 되면, 그 이론은 기반 지식과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에 곧바로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그리고 이해했다 생각하더라도 사실상 이해하지 못한 상태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또한 과학은 수학을 언어로 한다.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수식을 활용하기도 하고, 또 수식에 의해 새로운 이론을 유도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수식을 다루다 보면, 각 변수가 무엇을 말하는지, 방정식이 본질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잊어버리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왜 그런 경험 있지 않나? 학교에서 실컷 배웠고, 연습문제도 많이 풀었는데 누군가가 설명해달라고 하면 막상 한 마디도 못하겠는거... (주입식 교육의 폐해 ㅠㅠ)

시험 칠 때는 숫자 대입해서 열심히 잘 풀었는데, 막상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어.. 뭐지?' 하면서 벙찌는 경험... 안타깝지만 문제를 풀기 위해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 개념이 진짜 의미하는 본질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비단 학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현업에 종사하면서도 그런 사람들을 종종 본다. 설명은 복잡하고 장황하지만, 결국 얘기는 도돌이표로 맴돌고 본질적이고 중요한 내용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답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된다.

 

오캄의 면도날은 이러한 상황을 경계하려는 개념인 것이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

복잡하고 장황한 설명은 집어치우고 가장 핵심이 되는 것만 말하라는 것...

 

 

진실은 단순함에서 찾아야 한다. 다양성과 혼돈에서가 아니라 - 아이작 뉴턴

 

 

일찍이 오캄의 면도날을 접한 덕분에 나는 항상 어떠한 개념의 내용이 복잡해질때쯤 최대한 간단한 언어로 풀어서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게 습관이 되었다. 

사실 그 과정은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시험 공부에는 그닥 효율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아니면 그냥 남들보다 더 멍청하거나 느렸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면접이나 발표처럼 누군가에게 설명해줘야 할 때 이러한 습관은 상당히 도움되었다. 쉽게 설명할 수 있었고, 내가 확실하게 공부해둔 영역에 있어선 자신감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깊게 생각하여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간단하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체감했던 것이다.

 

이 오캄의 면도날의 개념을 블로그의 글을 작성하는 데에도 활용하려고 한다.

사실 이 포스팅은 그냥 마음가짐을 다 잡으려 쓴 글이다.

첫 포스팅이니 만큼 어떤 생각으로 글을 쓸지 정리하고 싶었다. 

이해하기 쉽고 간단한 포스팅을 쓰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다. 

 

그 동안 경험해본바, 내가 필요로 하는 전공 지식이나 기타 정보를 찾기 위해서 웹사이트를 뒤져보았을때 정보 자체는 많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미가공(?) 상태의 컨텐츠들이 많았다. 스스로 복습도 해둘 겸 쉽고 간단하게 정리하여 이 블로그에 기록해두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블로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

 

근데 간단하게 설명하라는 주제를 가져와놓고

그에 맞지 않게 너무 길고 장황한 일기를 작성한 것 같다;;;

 

글쓰기 실력도 많이 부족한 것 같네;;

돌아보니 문단 배치가 참 어색하다 ㅋㅋㅋ

뭐 어쩌겠나.

시작부터 완벽할 수는 없는 법. 

 

앞으로 점진적으로 업그레이드 해나가야겠다.